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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산 증인] 당시 조선대 의과대학 4학년 이민오씨

후기자 2019. 5. 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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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이다. 광주의 5월은 공기조차 무겁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끈 5·18민주화운동이 39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광주 학살' 책임자 전두환은 반성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최근 전두환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법정에 섰다. 물론, 모든걸 부인했지만.)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광주(光州)와 전남(全南)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의 법정기념일이다. 

포스팅 3회에 거쳐 직접겪은 사람들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민오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을 잡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흩어져 쫓기 시작하자 골목길로 도망쳤던 기억이 납니다.”

5·18 당시 조선대 의과대학 4학년이었던 이민오(65·당시 26세)씨는 1980년 5월 광주를 이같이 회상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외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39년 전 광주의 참상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민오외과의원 약도

1980년 5월18일은 광주일고에서 조선대 의과대학 동문체육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그는 예정보다 일찍 행사를 마친 후 금남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금남로에서 열린 집회를 지켜보던 그의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계엄군이 이곳에 있는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씨는 “오후 3시께 군부대가 줄맞춰서 오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갑자기 시민들을 잡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혼자 골목길로 쫓겨 광주일고 교장 관사로 숨었다. 관사에 있던 사모님이 안방에 숨겨줬지만 끝까지 쫓아온 계엄군 3명에게 들통 나 그 자리에서 군홧발로 복부를 짓밟혔다”며 “그 뒤로 금남로에 끌려가 땅에 머리를 박고 오후 9시까지 대기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머리를 박고 있는 6시간 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복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며 “통증이 심한데도 시민 30여명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가 저녁 내내 조사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조사를 마친 이씨는 복부 통증이 심해져 통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진단 결과는 췌장 파열이었다.

그는 당시 통합병원 진료기록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었다. 진료기록에는 수술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씨는 “통합병원에서 입원하고 있을 때도 총상을 자주 들었다”며 “특히 21일은 총성이 컸고 병원에도 부상자들이 많이 왔다. 수용환자만 수백명에 달했다”고 소회했다.

그는 당시 의료진들 덕분에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는 “당시 저를 수술해줬던 이정융 진료부장과 김선경 외과과장께 정말 감사하다”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그분들의 모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의 덕이다”고 언급했다.

이씨는 끝으로 “아직까지도 외부에서는 왜곡된 시선으로 5·18을 바라보는 게 안타깝다”며 “앞으로 진실이 뚜렷하게 밝혀지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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